CHUN NUNN 천눈이
MY SUBMARINE


2011.11.19-12.09
Opening Reception 11.19 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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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_2000*1100_Oil on canvas_2009




천눈이 작가는 서문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사실은 작가 본연의 명확한 작업적 분석이 제대로 되지 못한 채 남겨질 텍스트의 잔재가 걱정되는 것이다. 전시를 만드는 디렉터로서 만족스런 믿음을 드리지 못한 마음도 있지만, 작품의 실체에 접근할만한 재량의 부족함도 이번 전시를 디렉팅하며 함께 느낀다.




4.jpg Untitled_혼합재료_20×20cm_2008  /  Untitled_캔버스에 유채_20×20cm_2008




5.jpg 생성의 기록들_캔버스에 유채_230×340cm_2011




처음 작품을 보고 나 역시 천눈이 작가의 장르를 ‘추상’이라 생각하며 감상했다. 정형화된 선입견의 잔눈으로 감상한 것이다. 기본적인 추상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이론 따위가 존재하겠는가? 누구나 말하는 것처럼, 세상 속에 표현된 무엇이라는 이 무한대적 조형성을 어떻게 함축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저 구상과 비구상의 차이로만 눈대중할 것인가? 어린아이들의 알 수 없는 ‘비정형스러운’ 흔적들도 가치를 담고 가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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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ing on the beach_캔버스에 유채_각 지름 40cm×5_2009 





7.jpg 나의 수족관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1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보던 중, 완성된 한 작품을 보며 설명을 부탁드렸다. 내 딴에 완성도란, 그나마 형태적으로 명확한 조형이 보이는 결과물 이었나보다. “그거 아직 한참 미완성인데요.” 작가의 비구상적 조형의 완성은 점, 선, 면의 알 수 없는 유기적 표현이 아닌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작가의 신기루들이 캔버스에 전체적으로 겹치며 나오는 진득한 자기 치유적인 표현의 결과인 것이다. 육체적 언행으로서의 소통방식을 취하지 않고 누가 봐도 근거를 이해할 수 없는 형상들로 본인의 자아를 세상과 공유하려 한다. 오히려 그런 노력의 화폭들로 비이상적인 세상의 잣대를 포용해 보려고도 한다. 작품의 녹아 흐르는 듯한 형상들은 거친 소용돌이 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간 후로도 편안히 숨을 쉬며 관망할 수 있는 물결과 같은 편안함을 안겨준다. 작가의 작품을 보며, 이해할 수 없음이 아닌 현재 작가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갈등과 갈증을 필연적 관계의 터치와 구도로 나열됨을 느낄 수 있다. 




8.jpg Oh my paradise_캔버스에 유채_72.5×91cm_2011




9.jpg 남겨진 것들_캔버스에 유채_220×120cm_2011




추상은 불분명하고, 불명확함 따위가 아니다. 더함과 덜함의 경계에 서 있는 작가들의 심미안적 선택으로 표현된 결과일 뿐이다. ■유디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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