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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적추락 / 翅膀的墜落 / Wings’ Fall / La Chute des ailes

 

우리는 날개를 타고 태어났다.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
발터 벤야민의 ‘Engelus Novus [새로운 천사-폴 클레의 모노프린트, 1920]’ 해석처럼 우리는 역사 속 과거의 상처와 슬픔에 끊임없이 가로막힐지라도 앞을 바라보고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을 희망이 있다. 벤야민의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벤야민 클레의 작품을 영적인 방식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땅에 붙어 부정적인 감정에 더 깊이 빠져들도록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은 참혹하다. SNS, 소셜 미디어, 그리고 구식 미디어 유산은 특정 인종, 국적, 성별, 사회·정치 집단에 대한 절망과 증오를 끊임없이 양산한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증오는 더 악화되고 있다.

우리는 절망의 땅에 떨어져 날개를 잊어버린 걸까?

집단적 사고는 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왜곡, 오해, 오용의 위험을 내포한다. 그래서 우리의 의심과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과거 역사를 파헤쳐 다양한 관점을 끌어내는 것이 항상 필 요하다.

1940년 스페인 국경에서 나치에 체포된 후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 발터 벤야민은 무슨 생 각을 했을까. 그의 자살은 더 이상 진보를 마주할 수 없는 천사처럼 다가온다.
어둠 전체와 특정 삶에 대한 증오는 인류의 추락과 천사의 추락을 증명한다.

그러나 추락 천사에게도 여전히 날개는 남아 있다. 우리의 역사는 늘 진보와 후퇴를 반복적으로 하며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이 ‘날개의 추락’에 관해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에게 전시 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작가들의 날개의 추락의 이야기 속에는 이제까지 이 선형적 형태의 도시 세상에서 어떻게 그들이 날개 속에 다른 선을 가진 내면 세계를 간직해왔는지가 담겨 있을 것이 다. 또한 각자 날개의 추락에는 각자의 고통과 슬픔의 폭풍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때로는 개인적이며 때로는 공감적일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파헤치고 자기와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선형적이고 한 방향으로 치우친 세계에서 포스트모던적이고 다형 적인자기세상을그리는일은 추락없이는일어날수없을지도모른다.

왜냐면 추락 없이는우리가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래큐레이터

 

 

We are born with wings. Never forget the fact that we are a spiritual being.
Like Walter Benjamin’s interpretation of Angelus Novus [Paul Klee’s monoprint,1920] we might be constantly hurdled by the past wounds and
the past grief in history, but there is hope that we can look forward and be ready to fly. Benjamin’s interest in mysticism must have made him interpret his friend’s work in a spiritual way.

However, I do believe that we have invisible wings in us. We are not born to be stuck to the ground, and let us go down deeper into our negative emotions. What is happening in the current life is disastrous. SNS, Social media, and old media legacy don’t stop creating despair and hatred against certain races, nationalities, genders, social, and political groups. Especially the hatred between men and women in gender is being aggravated in the social inequality worldwide.

Have we fallen to the ground of despair, forgotten our wings?

The collective mind carries a danger of misrepresentation, misinterpretation, and misuse in the historical, social, and political context. It is always necessary to dig up past histories to bring out various perspectives to clear the doubt and darkness in us.

I wonder what Walter Benjamin thought about when he pulled the trigger against his head after he was caught by the Nazis at the Spanish border in 1940.
His suicide comes as an angel who cannot face the progress anymore.
The whole darkness and the hatred towards a certain life prove the fall of mankind and the angels’ fall.

Yet even the fallen angel still possesses wings. Our history perpetually cycles through progress and regression, advancing in some direction. I wish to pose this question of the “fall of wings” to five female artists through an exhibition. Within the artists' narratives of the fall of wings lies how they have preserved, within their wings, an inner world bearing different lines from this linear form of the urban space. Moreover, each fall of wings would have been accompanied by its own storm of pain and sorrow. These stories may be personal at times and empathetic at others. Digging into the past and confronting oneself is never an easy task. However, in this linear, one-directional world, the act of drawing a postmodern, polymorphous self-world might not be possible without the fall.

Without the fall, you can never realize your 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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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아현_뒤에서 불어오는 바람_2026_영상설치_4분 15

 

류아현 (Ahyun RYU, 2000) @ryuhyun_ghost

나의 유년기부터 쌓인 기억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십 년에 걸쳐 퇴적되는 트라우마와 노스탤지어가 뒤섞여 만드는 혼란, 그리고 그 혼란을 마주하는 나 자신을 담아낸다. 내가 과거에 경험한 것들을 부정하는 것처럼 생각과 다르게 흐르는 세상을 보며 느끼는 이질감을 되짚어보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생각한다. 사고의 흐름을 따라 이미지를 수집하고 나열하면서 나 자신이 과거를 흡수하는 과정은 영상의 형태로 남는다. 이것은 일련의 기록이자 재정렬의 행위이다. 지난날의 감정들을 소화시키고 미래의 나에게 현재의 내가 발견한 감각을 남겨둔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면서 또다른 기록을 남기고 새로운 정렬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마치 하나의 순환을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다. 혼란으로 가득 찬 기억을 정돈하고 다듬고 곱씹으면서 반추(反芻)의 순환을 이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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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노을_순환의 음식_2026_퍼포먼스 사진

 

변산노을 (Byeonsan Noeul, 1993)  @physicsnatura

나 아닌 것이 내가 되는 것을 위하여 창작한다. 나에게 음식은 인간이 외부 세계를 내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유일한 주체적·문화적 매개체이며 음식은 인간의 '물질적 실체(피와 살)'를 바꾸는 유일한 것이다. 전시 형태는 신체의 형태, 혹은 옷의 형태로 드로잉에 담긴 주제는 단순히 식품으로서만 이야기하기보다 땅과 물, 뿌리와도 연결된 음식을 함께 엮어보고자 한다.  음식이 나를 만들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것이 나에게 들어와 다시 나가는 과정. 그러한 돌고 도는 굴레에 관한 관심이 항상 있었어서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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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테메 카제미_Poor Knee; [Loose tongue]; Trigger Finger_2024_비디오 영상 설치_12분 10초

 

파테메 카제미 (ﻓﺎطﻤﮫ ﮐﺎظﻤﯽ) Fatemeh KAZEMI, 1992) @afimoh_____

나는 작가로서 오랜 시간 동안 “슬픔(grief)”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전시 작품 “Poor Knee; [Loose Tongue]; Trigger Finger”(2024)는 우리의 슬픔이 해체되는 과정을 사유하며, 슬픔이 몸에서 분리되어 파편화된 기억 속에서 안식처를 찾아 디지털 꿈의 풍경을 떠돌지만, 끝내 자신의 그릇을 완전히 찾지 못하는 상태를 그린 작품이다. 영상은 세 개의 독립된 방으로 전개되며, 건축과 오브제가 꿈결 같은 상태로 결합된다. 각각의 방은 눈물의 분수대, 포도와 함께한 기억의 방, 그리고 슬픔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감정의 해소, 향수, 그리고 공유된 고통의 메아리를 탐구한다. 영상의 소리에는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 붙잡힌 보이지 않는 고통을 말하는 서사를 담고 있으며, 그 여정 속에서 저항자들과 동반자들을 불러 모아,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 안에서 함께 슬픔의 다성(多聲)을 노래하도록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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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_공든탑_2026_설치 조각_혼합재료

 

이은정 (Eunjung LEE, 1974) @eunjung5899 

나는 무언가를 쌓으며 살아간다. 관계를 쌓고, 시간을 쌓고, 기억을 쌓고,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수많은 감정과 경험을 쌓아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때로 성취가 되고, 때로는 보호막이 되며, 때로는 삶을 버티게 만드는 힘이 된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올린 것들이 반드시 단단한 중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감각에서 이 작업은 시작된다. 작은 소망과 바람을 담아 돌을 쌓아 올리는 행위는 불확실한 삶을 견디며 더 나은 내일을 염원하는 인간의 오래된 몸짓이다. 나의 “프로타주(Frottage)” 방식의 작업으로 질감과 흔적을 채집하고 드로잉과 사진 콜라주를 사용해 속이 비어 있는 입체의 형태로 재구성한 벽돌은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라 시간을 담는 하나의 돌이 된다. 작품이 된 벽돌은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기록이며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품으며 단단한 중심을 지니지 않은 채 비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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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일_손을 뻗는 지니_2026_장지에 혼합재료_116.8 x 91 cm

 

이해일( Haeil LEE, 1992) @jao2921

그곳은 어떨 때는 파도 속이었다. 어떤 이는 뛰쳐나가고 어떤 이는 이미 수장되어 있는 가운데서 그는 끊임없이 솟구쳤다. 화분에 박힌 식물이 되어 벗어날 수 없는 속에서도 손을 뻗거나 위로 향하려는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물에 갇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우왁스럽게 손을 뻗어댔다. 손을 꺾고 늘어뜨리고 부러뜨리는 것도 상관없었다. 그 곳은 꿈 안이기에 그러한 아픔은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새에 중독이라도 된 듯 미친 듯이 달려드는 자신과 그에 따라 이탈되는 신체의 기묘한 형체는 그의 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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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숙_무중력_2026_캔버스에 아크릴


최윤숙 (Yoonsuk CHOI, 1957) @byyoonsook

뿌리새에 대한 주제로 날 수 있는가?를 물어봤다.

묻는 순간 날개는 신화가 된다. 진실은 질문 이전에 있다 가능성이 아니라 기억이다

날 수 없는 게 아니라 ‘앉아 있다’ 생각에 앉아 있고 개념에 앉아 있고 ‘나’라는 이미지에 앉아 있다. 반복된 생각의 습관이 깊이 뿌리를 내려 뿌리새가 되었다.

붙잡고 있던 것을 놓고 날개를 찾던 마음이 사라질 때 날개는 드러난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 …날개에 대해 얘기하려면 그것에 대해 모를 필요가 있다

나의 신비주의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새는 지나가고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