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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믿음-표상의 삼면화
: 변증법적으로 갱신된 동시대 성상학

 

 

“간단히 말해, 우리는 대상, 특히 그림에 대한 마법적이고 전근대적인 태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며,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태도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는 것,

그 징후학을 구성해 보는 것이다.”

— W. J. 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김전유경 옮김, 그린비, 2010, p. 56.

 

그림은 단지 색채와 형태를 지닌 물질 대상이 아니다. 어떤 힘을 내재하고 있다. W. J. T. 미첼이 말했듯, 이미지는 우상숭배, 페티시즘, 토테미즘의 전통 속에 있으며, 종종 그림이 감정·의지·의식·행위성·욕망을 가진 존재처럼 다루어져 왔다.1 노현탁은 미술이 지닌 이러한 근원적 힘을 환기하고, 이를 어떻게 감각하고 조형 문법으로 구조화할 것인가를 실험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미술에 내재한 ‘근원적 힘’은 무엇인가. ‘믿음’이다. 닮음이 원형의 힘을 불러온다는 ‘믿음’. 재현이 부재를 현전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은 오늘날에도 미술 내부의 어떤 층위에 남아 있다.

선사 동굴벽화를 미술의 기원으로 상정할 때, E. H.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서 이를 동물의 힘을 제압하려는 주술적 목적의 산물이라 추정했다. 이는 미술이 단순한 모사를 넘어 신비적·실천적 힘과 결부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고대 철학에서 예술은 ‘미메시스(μίμησις, mimesis)’로 이해되었다. 플라톤은 이 미메시스를, 감각적 사물(이데아의 모상)을 다시 모방하기 때문에 진리에서 멀어진다고 보았지만, 닮음을 통해 부재한 원형(이데아)을 상기시키는 효력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미메시스가 정동(情動, affect)을 정화하는 제의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미메시스로서 예술은 이데아의 속성이 배어 있으며, 제의적 기능 또한 품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은 중세의 종교 이미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중세의 성화(이콘, eikōn)는 그리스도·성모·성인(원형)의 닮은 형상으로 제시됨으로써 ‘현전의 효과’를 산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성현의 권능’을 체험하게 했다. 성화는 성스러움을 중개하는 매개체로 기능하면서 숭배, 감응, 기적 등의 사회적 의례를 동반했다.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지적했듯, 사진과 영화가 도래하기 이전의 회화는 제의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처럼 회화는 근원적으로 원형의 소환(현존성)과 이에 따른 주술적·숭배적 성격(제의성)을 지닌다.

노현탁은 전근대적인 회화의 힘(현존성과 제의성)을 오늘의 제도·기술·유통 체계 속에서 동시대의 예술적 장치로 재가동함으로써, 회화의 근원적 힘을 일깨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회화를 단순한 이미지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현실의 구조와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감각적 인터페이스로 확장하고자 한다.”(작가노트) 이러한 작가의 선언을 받치고 있는 것은 회화의 근원적 힘이다. 그는 회화의 현존성과 제의성을 동력 삼아 자신이 인식하는 외부 구조를 화면에 펼쳐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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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된 믿음_액자 포함된 캔버스 프린트, 유화 리터칭_32cm × 42cm_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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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메이커_캔버스에 유화& 금박_90.9cm × 72.7cm_2025

 

 

오늘의 성상학

노현탁의 작업은 언제나 ‘힘’과의 대면에서 출발한다. 그 ‘힘’은 사회적 압박이기도 하고, 기복신앙적인 관습이기도 하며, 실제 작가의 몸에 가해지는 물리적 힘이기도 하다. 그는 초기 작업에 불안 심리를 신체로 재현했고(대학 시절~2007), 2006년 ⟪오르가닉 바디⟫ 전시 전후로 외부 힘의 심리 작용을 초현실적 풍경으로 전치·형상화하며 주제를 확장하였다. 2017년 ⟪말려진 상상⟫ 전시 이후에는 사회·자본·제도 등 외부 구조가 감각을 재배열하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추적하며, 재난·전쟁·폭력·정치 권력 같은 거대 힘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연도별 사건‧이미지를 수집·분류·재구성하여 사건들 사이에서 발생한 틈들을 현재적 감각으로 메우며 조형화하였다. 이 시기 작가는 관념적인 힘의 표상을 넘어 저주파 EMS(전기근육자극)3를 제작 과정에 직접 삽입해 ‘외부 힘–신체–이미지’의 연결 구조와 변환 과정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2019년 ⟪창경(窓鏡⟫에서는 뉴스·광고·명화 등 익숙한 기표를 EMS로 유발된 떨림·왜곡으로 재편함으로써, 물리적 힘이 지각과의 관계를 유비적으로 가시화했고, 2022년 ⟪야간사냥⟫에서는 ‘집=자산’이라는 자본주의 코드가 개인의 감각을 교란하고 불안을 증폭시키는 현실을, 녹색 페인트 바닥이 지닌 경제 논리로부터 부동산·계급의 상징체계까지 일깨울 수 있는 일상 이미지를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하여 드러냈다.

이번 전시 ⟪풍수백화점⟫4에서 노현탁은 뒤틀리고 왜곡된 현대의 ‘믿음’을 해부한다. 정치·문화·시장·유통의 국면에서 자본화·권력화된 주술이 ‘믿음의 관습’을 작동·전유하는 양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재난·정치·대중문화의 틈에 잠복한 믿음의 광기와 그 자본화된 유통 방식, 감각의 진동을 조형화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포착되는 것은 ‘위기-믿음-표상(이미지)’의 삼각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를 결속시키는 핵심 동력은 ‘표상’이다. 표상은 회화의 근원적인 힘, 즉 ‘닮음-현존’과 제의적 속성을 품고 있다. ‘위기-믿음-표상’의 정점에 있는 ‘믿음’은 부재(이루어지지 않음)를 현존(이룸)으로 끌어오려는 숭배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회화의 근원적 ‘표상’, 즉 ‘닮음-현존’ 논리와 제의성에 닿아 있다.

노현탁은 표상-믿음 구조 속에서 중세 성상학의 메커니즘을 동시대의 조건에서 재가동하여 성스러운 임재가 어떻게 세속의 표상 체계로 이행하는지를 추적한다(<풍수백화점>, <흔들리는 신체> 연작). 작가는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é)의 삽화를 통해 단테 『신곡(La Divina Commedia)』의 지옥을 호출하고, 그 도상을 현재의 대중상업문화 환경으로 이식함으로써 현대인의 불안을 동시대 성상학으로 번역한다. 이렇게 ‘이콘’(성상)의 자리를 대중상업문화의 ‘아이콘’이 점유하는 상황5은 비대해진 소비성이 빚어낸 오늘의 지옥도6와 같다(<풍수백화점>, 2024). 동시에 작가는 작업을 통해 ‘보여주는 신체’의 관습을 갱신한다. 중세 이콘의 전시 형식(성상 진열장)을,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나 개인 SNS의 공간과 같은 육면체 공간(그리고 배경과 분리된 사각의 공간)—촬영과 SNS 개시는 현대의 ‘보여주기’ 장치라고 할 수 있다—에 중첩함으로써 단절(개인성)과 노출(공공성)의 장(場)에 신체를 위치시킨다. 그 내부의 인물은 불안과 좌절의 몸짓으로 전시된다(<흔들리는 신체> 연작, 2024-2025). 대중상업문화의 환경과 ‘보여주기’는, 문화·사회적 외부 힘의 작용을 가시화하는데, 작가는 여기에 저주파 EMS(물리적인 힘)를 작업에 개입시킴으로써,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외부의 힘을 물리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외부 힘–신체–이미지’의 변환 회로를 작동시키는 EMS는 화면 속 신체 일부를 왜곡하거나 실재감을 상실케하고, 기록된 정보의 지시성을 암호화한다. 작가는 회화에 내재한 전통적 태도에 발 딛고, 이콘을 현시하는 제도적 장치를 차용하여, 성스러운 임재를 소비·전시 기호의 임재로 치환한다. 이로써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섬기며 어떤 조건에서 버티는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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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은 나방_캔버스에 유화 & 금박_145.5cm × 112.1cm​​​​​​​_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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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도-2_액자 포함된 종이에 잉크젯 프린트_69.8cm × 59.8cm_2025​​​​​​​

 

 

위기의 주술화, 믿음의 자본화

‘위기-믿음-표상’의 구조에서 이 구조를 작동하게 하는 촉매는 ‘위기’다. 위기는 불안을 증폭시키고, 종교·재난·정치·매스미디어·사주·자기 계발의 통치 언어가 된다. 노현탁은 ‘이루어지지 않음’이 남긴 공백을 메우는 허언이 믿음의 언어로 포장되는 메커니즘(<구원 받은 나방>)과, 참사와 정치라는 공적 공간에 침투한 주술적 행위(<지푸라기> 연작, <킹스메이커>)가 현실에 균열을 내는 ‘위기의 주술화 과정’을 추적하며, 희망고문을 지속시키는 클리셰의 은폐된 매개 위치(<2년만 기다리세요>, <노력의 배신>)를 드러낸다. 실제 사건의 장에서 작동하는 주술적 행위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증폭되고, 이미 진부해져 클리셰(cliché)로 고착된 ‘믿음의 언표’는 끝없는 기다림과 희망의 망각을 생성함으로써 실패의 감각을 지운다.

‘사건의 장’에서 주술은 실패(이루어지지 않음)를 뒤집는 표상 장치로 기능한다. 1992년 다미선교회가 말한 휴거가 실패한 직후, “나방이 휴거됐다”라는 발화가 실패의 공백을 메우는 기호로 승격되는 역설은, 실패를 성화적 구도로 전환하려는 맹신을 보여준다(<구원 받은 나방>, 2025). 재난 수습 현장이 중계로 공적 무대가 되자 ‘초능력 소년’과 무속인이 호출되는 풍경은, 합리적 판단이 멈춘 틈에 주술이 응급 대체물로 진입하는 사회적 증상을 노출한다(<지푸라기> 연작, 2025). 이때 EMS가 유발한 비의도적 흔들림은 현실/믿음의 균열을 시각화한다. 대선 TV토론의 손바닥 ‘王’ 표식은 제도적 공간에 침투한 주술의 징표로서 공동체 감각에 상흔을 남긴 사건으로, 작품에서 그 흔적이 믿음의 성흔(금빛)을 연상시키지만, 결국 공동체의 상흔(깊이 패임)으로 귀결되었음을 암시한다(<킹스메이커>, 2025). ‘클리셰의 장’에서 주술은 언어를 통한 통치술로 작동한다. 사주 상담에서 발화되는 “2년만 기다리세요”라는 상투어는 매년 촬영한 자기 초상의 중첩과 그 중첩이 발생시킨 판독 불가능한 시간의 흐름은 기다림의 무효성을 암시한다(<2년만 기다리세요>, 2025). 또한 자기계발 담론의 신앙문구인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시시포스적 노력을 미화하며 끝없이 노력의 굴레에만 머물게 한다(<노력의 배신>, 2025). 이러한 위기의 주술화는 종교·재난·정치·매스미디어·사주·자기 계발의 장(場)에서 망상적 믿음을 생산·유통하며, 사회 내부에 상흔을 남긴다. 노현탁은 위기의 국면에서 수행되는 공허한 주술적 행위와 언어가 빚어낸 ‘틈’을 포착해 가시화한다.

이러한 노현탁 작업은 최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 핵심에는 기성품(ready-made)의 도입과 활용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실제 존재하는 온라인 쇼핑몰(풍수백화점; www.pacher.co.kr)에서 구매한 길상물(吉祥物)을 변형하여 제시함으로써, 이콘(성화)에 대한 숭배 욕망—정확히는 성스러움의 사적 소유 욕망—이 자본에 포섭되어 복제·유통·소비의 회로에서 작동하는 현상을 드러낸다. 복제·유통·소비되는 길상물은 ‘현존’을 보증하는 ‘닮음’의 도상에서 사적 소유의 증거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작업의 전개는 크게 평면과 입체 두 범주로 분화된다.

평면 작업은 상징과 사실, 복제와 개별의 충돌을 표면화한다. 작가는 복제된 달마 인쇄물 위에 타자의 사실적 얼굴을 중첩해 신성/개인의 경계와 상징/사실의 간섭을 가시화하고(<달마도> 연작, 2025), 사무실에 걸린 성화와 액자 유리에 비친 사무실 풍경을 겹쳐 그려 성(聖)과 속(俗)의 동시 현전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신성의 위치를 질문한다(<중첩된 믿음>, 2025). 이는 이콘을 ‘신성의 제단’이 아니라 ‘자본주의 제단’에 봉헌하는 소비문화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입체 작업은 믿음–자본의 결합을 대체된 물질성으로 조형한다. 그는 연화수 길상물의 연꽃을 실제 지폐나 캐릭터 머리로 치환해 성스러운 상징(蓮花)의 변질과 자본의 개입을 노출하고(<연화수> 연작, 2025), 물고기·두꺼비 길상물의 비늘과 피부를 실제 지폐로 대체해 복·재물의 기호(물고기·두꺼비)가 자본에 포섭되는 순간을 명징하게 제시한다(<초재금룡(招财金龙)>, 2025, <초재섬서(招财蟾蜍)>, 2025). 또는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탑을 절단·재배열해 굽은 인간의 척추로 재구성함으로써, “신앙의 수직 구조가 어떻게 인간의 감각과 불안을 형성하는가”(작가노트)를 형상으로 묻는다.(<문창골탑(文昌骨塔)>, 2025).

그의 작업에서 ‘신성–상품–소비’로 작동하는 동시대 물신성은 유통 경로·물질 질감·신체 감각의 층위에서 드러난다. 작업은 신성–상품–소비 구조를 지닌 ‘믿음의 자본화’를 비판적 감각으로 가시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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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2_캔버스에 유화_53cm × 45.5cm​​​​​​​_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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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신체-2_캔버스에 유화_162.2cm × 130.3cm_2025

 

 

메타 오토마티즘과 갱신된 성상학

노현탁의 표현 양식에서 핵심은 EMS를 매개로 한 ‘메타 오토마티즘(Meta-Automatism)’이다. 작가가 만든 이 개념은 외부의 구조, 즉 외부의 힘에 반응하는 몸을 회화의 매개로 삼는 실천이다. 여기서 외부 구조는 자본·제도·관습 같은 비물질적 힘까지 포괄한다. 다만 직접적인 실천의 차원에서는 EMS의 물리적 개입이 이 개념과 가장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노현탁은 의식적으로 설계한 형상 위에 EMS가 만들어내는 비의도적 떨림을 병치함으로써, 화면에 두 개의 시간—계획의 시간과 자극의 시간—이 동시에 흐르도록 배치한다. 두 시간의 시차는 감각이 어긋나고 해석이 멈추며 의미를 불완전하게 하는 ‘틈’, 바로 이격(離隔)을 만들어내는데, 이 이격을 통해 작가는 현재의 아이러니를 부상시킨다.

물리적 외부 구조로서 EMS는 이번 전시에서 세 방향으로 기능한다. 첫째, 증거로서의 기능. 비가시적인 외부의 힘(종교·재난·정치·매스미디어·사주·자기계발)이 남긴 흔적을 물질적 흔들림으로 표면에 현시한다. 둘째, 저항의 기능. 완결성과 정합성을 요구하는 예술의 성상성을 흔들리는 표현으로 훼손한다. 셋째, 번역의 기능. 신화적 상상, 상품 기호, 정치적 표식 사이의 간섭을 시각 언어로 치환하여 서로 다른 체계들을 동일한 진동의 문법으로 연결한다. 요컨대 메타 오토마티즘은 진동과 간섭 속에서 세계의 균열을 포착함으로써 표현 가능 영역을 확장한다.

노현탁은 회화, 넓게는 모든 예술—미술, 음악, 문학, 춤, 연극 등 모든 예술은 어떤 것을 재현(모상)하는 것에서 시작했다—이 근원적으로 지닌 제의성을 현재 사회에 만연된 믿음(현대의 허구적 제의성)과 중첩함으로써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풍수백화점⟫은 현대의 성상(현대의 믿음 이미지)이 지닌 허구성 드러내는 성상파괴(Iconoclasm)의 서사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갱신된 성상학(Iconology)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현존성과 제의성이라는 미술의 원초적 힘을 현대의 허구적 제의성과 변증법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오늘날의 성상학을 시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더 이상 하늘에서 강림하지 않는다. 택배 상자에 담긴 길상물로 도착하고, 진부한 문구로 각인되며, 손바닥의 글자로 재현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공론장에 주술을 불러오고, 믿음을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욕망케 한다. 이제 믿음은 사고팔 수 있는, 언제든 ‘지금–여기’로 호출할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숭배는 자신의 자리를 바꿨다. 미키마우스의 얼굴, 불안과 좌절의 신체, ‘王’ 글자, 진부한 믿음의 문구, 길상물의 가격표에 자리 잡았다. 노현탁은 작업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그리고 믿음은 어떻게 소비되는가.

 

안진국 (미술비평)

 


1W. J. 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김전유경 옮김, 그린비, 2010, pp. 53-58.

2물론 동굴 벽화의 기능과 의미에 관해서는 집단 정체성·결속을 위한 사회적 장치, 지식 교육과 기억의 장치, 심미·놀이를 위한 감각적 장치 등 다양한 가설이 존재한다.

3EMS는 Electrical Muscle Stimulation의 약어로, 전기 신호로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기술이다. 주로 피부에 부착형 패드 방식의 저주파 자극기에 쓰이며, 전극이 신호를 근육에 직접 전달해 자극을 발생시킨다. 작가에 따르면, 전기 신호를 다양하게 변조할 수 있어, 신호의 특성에 따른 선의 변형 양상을 연구할 수 있다.

4작가는 실제 존재하는 온라인 상호 ‘풍수백화점’(www.pacher.co.rk)을 전시 제목으로 가져왔다.

5‘이콘’과 ‘아이콘’은 모두 그리스어 eikōn(εἰκών)에서 유래한 용어다. 두 표현은 로마자 표기에서는 동일하게 icon이지만, 한국어 사용 맥락에서, ‘이콘’은 종교·신앙적 맥락의 성화나 상징적 도상을 지시하고, ‘아이콘’은 일상 및 디지털 환경의 시각적 기호 또는 상징적 인물을 의미한다.

6구스타브 도레의 삽화에는 사람들이 금화로 가득 찬 거대한 자루들을, 안간힘을 쓰며 지탱한다. 그 그림이 삽입된 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재화는 운명에 맡겨져 있건만, 인간은 그 짧은 바람 때문에 다투는구나. 달 아래 있는, 언제라도 있었던 황금을 전부 바쳐도 이 지친 영혼 중 하나라도 쉬게 할 수 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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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백화점_캔버스에 유화_193.9cm × 130.3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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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골탑_혼합재료_48cm × 12cm × 16cm_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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