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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개를 타고 태어났다.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의 해석처럼 우리는 절망적 과거의 상처와 슬픔에 끊임없이 가로막힐지라도 진보의 폭풍 속에서 뒤를 보지 말고 앞으로 날아올라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늘 진보와 후퇴를 반복적으로 하며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이렇게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우리의 삶을 이 전시를 통해 다양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동시대인에게 터무니없고 비현실적일지라도 작가가 날개를 펴고 진보를 향해 고군분투하며 가는 길은 매우 소중하다. 그렇기에 예술 속에서도 각기 다른 주제와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며 진보와 발전을 한다.

 

전시에 참여한 총 6 작가는 각자의 꿈꿔온 유토피아와 지연된 유예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참여 작가들은 회화, 조각, 글, 비디오, 요리 예술로 작가 고유의 다양한 형과 선을 만든다. 이들의 작품 속에는 각자가 창조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세계와 세상과의 부딪힘, 그 사이에 유예된 공간이 나타난다.이 유예된 공간은 이분법적이라기보다 역설적이고 인간적인 모순이 담겨 있다. 각자 날개에는 각자의 고통과 슬픔이 있다. 각 작가마다 슬픔, 치유, 기억, 인간 관계, 환경, 정신적 고통 등 다른 주제로 작업한 “선”에는 이 선형적 형태의 도시에서 어떻게 각기 다른 내면 세계를 간직해왔는지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는 때로는 개인적이며 때로는 집단적일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파헤치고 자기와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편파적인 선과 형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포스트모던적이고 다형적인 자기 세상을 그리는 일은 끊임없이 날고 다시 추락하고 다시 날아가는 반복적 행위 없이는 일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행위도 없고 보여짐도 없고 희생도 없다면 결국 작가의 유토피아는 무형적일 수밖에 없고 수많은 구름처럼 그저 한때의 생각으로만 남겨져 비가 될 것이다.

 

전시 참여 작가(류아현, 변산노을, 파테메 카제미, 이은정, 이해일, 최윤숙)는 각자의 시선에서 스스로의 인생과 인간 관계에 대해서 작품을 통해 얘기를 한다. 매우 평범하지만 소중할 수 있고 나이, 국적, 학력을 떠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각자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공감성을 찾아가는 것이 본 전시의 목표이며 현재 격동과 변화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파울 클레의 천사처럼 선택과 고민의 시간에서 도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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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아현_뒤에서 불어오는 바람_2026_영상 설치, 4분 15초

 

류아현 (Ahyun RYU, 2000) @ryuhyun_ghost

나의 유년기부터 쌓인 기억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십 년에 걸쳐 퇴적되는 트라우마와 노스탤지어가 뒤섞여 만드는 혼란, 그리고 그 혼란을 마주하는 나 자신을 담아낸다. 내가 과거에 경험한 것들을 부정하는 것처럼 생각과 다르게 흐르는 세상을 보며 느끼는 이질감을 되짚어보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생각한다. 사고의 흐름을 따라 이미지를 수집하고 나열하면서 나 자신이 과거를 흡수하는 과정은 영상의 형태로 남는다. 이것은 일련의 기록이자 재정렬의 행위이다. 지난날의 감정들을 소화시키고 미래의 나에게 현재의 내가 발견한 감각을 남겨둔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면서 또다른 기록을 남기고 새로운 정렬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마치 하나의 순환을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다. 혼란으로 가득 찬 기억을 정돈하고 다듬고 곱씹으면서 반추(反芻)의 순환을 이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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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노을_순환의 음식_2026_퍼포먼스 사진

 

+ 변산노을 (Byeonsan Noeul, 1993)  @physicsnatura 

나 아닌 것이 내가 되는 것을 위하여 창작한다. 나에게 음식은 인간이 외부 세계를 내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유일한 주체적·문화적 매개체이며 음식은 인간의 '물질적 실체(피와 살)'를 바꾸는 유일한 것이다. 전시 형태는 신체의 형태, 혹은 옷의 형태로 드로잉에 담긴 주제는 단순히 식품으로서만 이야기하기보다 땅과 물, 뿌리와도 연결된 음식을 함께 엮어보고자 한다.  음식이 나를 만들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것이 나에게 들어와 다시 나가는 과정. 그러한 돌고 도는 굴레에 관한 관심이 항상 있어서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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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테메 카제미_Poor Knee; [Loose Tongue]; Trigger Finger_2024_비디오 영상 설치, 12분 10초

 

+ 파테메 카제미 (Fatemeh KAZEMI, 1992) @afimoh_____

나는 작가로서 오랜 시간 동안 “슬픔(grief)”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전시 작품 “Poor Knee; [Loose Tongue]; Trigger Finger”(2024)는 우리의 슬픔이 해체되는 과정을 사유하며, 슬픔이 몸에서 분리되어 파편화된 기억 속에서 안식처를 찾아 디지털 꿈의 풍경을 떠돌지만, 끝내 자신의 그릇을 완전히 찾지 못하는 상태를 그린 작품이다. 영상은 세 개의 독립된 방으로 전개되며, 건축과 오브제가 꿈결 같은 상태로 결합된다. 각각의 방은 눈물의 분수대, 포도와 함께한 기억의 방, 그리고 슬픔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감정의 해소, 향수, 그리고 공유된 고통의 메아리를 탐구한다. 영상의 소리에는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 붙잡힌 보이지 않는 고통을 말하는 서사를 담고 있으며, 그 여정 속에서 저항자들과 동반자들을 불러 모아,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 안에서 함께 슬픔의 다성(多聲)을 노래하도록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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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정_공든탑_2026_설치 조각 (혼합재료)

 

+ 이은정 (Eunjung LEE, 1974) @eunjung5899 

나는 무언가를 쌓으며 살아간다. 관계를 쌓고, 시간을 쌓고, 기억을 쌓고,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수많은 감정과 경험을 쌓아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때로 성취가 되고, 때로는 보호막이 되며, 때로는 삶을 버티게 만드는 힘이 된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올린 것들이 반드시 단단한 중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감각에서 이 작업은 시작된다. 작은 소망과 바람을 담아 돌을 쌓아 올리는 행위는 불확실한 삶을 견디며 더 나은 내일을 염원하는 인간의 오래된 몸짓이다. 나의 “프로타주(Frottage)” 방식의 작업으로 질감과 흔적을 채집하고 드로잉과 사진 콜라주를 사용해 속이 비어 있는 입체의 형태로 재구성한 벽돌은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라 시간을 담는 하나의 돌이 된다. 작품이 된 벽돌은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기록이며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품으며 단단한 중심을 지니지 않은 채 비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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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일_손을 뻗는 지니_ 2026_장지에 혼합 재료_116.8 cm x 91 cm

 

+ 이해일 (Haeil LEE, 1992) @jao2921 

그곳은 어떨 때는 파도 속이었다. 어떤 이는 뛰쳐나가고 어떤 이는 이미 수장되어 있는 가운데서 그는 끊임없이 솟구쳤다. 화분에 박힌 식물이 되어 벗어날 수 없는 속에서도 손을 뻗거나 위로 향하려는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물에 갇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우왁스럽게 손을 뻗어댔다. 손을 꺾고 늘어뜨리고 부러뜨리는 것도 상관없었다. 그 곳은 꿈 안이기에 그러한 아픔은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새에 중독이라도 된 듯 미친 듯이 달려드는 자신과 그에 따라 이탈되는 신체의 기묘한 형체는 그의 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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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숙_뿌리새 #7 - 내일은 지금 여기_2026_캔버스에 아크릴
 

+ 최윤숙 (Yoonsuk CHOI, 1957) @byyoonsook 

뿌리새에 대한 주제로 날 수 있는가?를 물어봤다.

묻는 순간 날개는 신화가 된다. 진실은 질문 이전에 있다 가능성이 아니라 기억이다

날 수 없는 게 아니라 ‘앉아 있다’ 생각에 앉아 있고 개념에 앉아 있고 ‘나’라는 이미지에 앉아 있다. 반복된 생각의 습관이 깊이 뿌리를 내려 뿌리새가 되었다.

붙잡고 있던 것을 놓고 날개를 찾던 마음이 사라질 때 날개는 드러난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 …날개에 대해 얘기하려면 그것에 대해 모를 필요가 있다

나의 신비주의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새는 지나가고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