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장례 / 신건우 / painting & installation / 2016. 11. 11 - 11. 26

신건우

셀프장례

2016. 11. 11 - 11. 26



 

셀프장례-600.jpg

당신은 스스로 요단강을 건너본 적이 있는가.


 6.jpg




본 서문을 위해 지난 수개월 간거의 매일 신건우 작가를 만나 수없이 이야기해왔다그렇기에 문장은 졸렬하고 절반은 훌륭한 철학자들과 후학들의 문구를 발췌하여 조립해놓은 수준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그의 세계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다관찰해 본 결과신건우는 기본적으로 직관적인 세계가 즉흥적으로 흡수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자신 안에 예술가적 폭발력과 게으름이라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그리고 겸손함과 오만방자함을 절묘하게 병존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다자살욕구 따위는 없다간헐적으로 자신에게 스스로 망치질 하려는 조각상 같았다특이한 정신세계와 기성 사회문화를 씨름시키듯 살고 있다. ‘셀프장례는 그렇게 도출되었다그렇다누구라도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죽이는 퍼포먼스임은 즉흥적으로 알아챘을 것이다작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노라고 말한다따라서 아래의 이야기는 사족으로 치부해도 좋다그러나 신 작가에 대해 좀 더 애정과 관심을 갖고자 한다면 한 번 들어보시라.



 3.jpg




셀프장례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고령화 사회의 슬픈 단면이라는 수식과 함께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웰 다잉 well-dying’ 운동 따위가 먼저 나올 것이다물론 그 역시 참으로 무거운 의미를 지닌 행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티스트라는 명찰을 떼고 보면 현재 혼자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젊은이들 중 한 명인 신건우 작가에게도 그러한 세태가 아주 남의 말은 아닐 것이다전시장을 자신의 방처럼 꾸며 놓은 것 역시 현세에서의 필연적 종착점인 죽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더 나아가 죽지 않은 작가에게 전시에 방문한 불특정 다수가 실제 장례식장에서처럼 방명록을 쓰고 부조금 扶助金을 내는 행위는 이 땅의 죽어가는 아티스트들에게 진정한 공적 부조 公的 扶助를 해주는 상징적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5.jpg  



여기에 신건우의 셀프장례가 갖는 철학적 방향은 현세에 자신을 죽임으로써 새로운 자신을 얻는다는 분절점으로서기존의 실존주의에 대한 대중적 실천이기도 하다


 

1.jpg





먼저, “현대적 의미에서 실존의 모습을 처음으로 획기적인 신선함을 가지고 조명한 20세기 철학계의 금자탑적인 저작이라는 평을 받는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의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이 노린 것은 현존재의 본질적인 실존론적 구조의 해명이었다이 시도의 수행에 있어 하이데거는 현상학 現象學의 방법을 취한다현상학이란, “나를 가리키는 것을그것이 그 자신의 편에서 나를 가리키는 대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하이데거의 경우에는 현존성의 실존이라는 존재양식을그것이 나를 가리키는 대로의 모습으로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한다는 것이 시도되었다이것이 바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실존의 현상학이고그리고도 그때에 실존에 달라붙는 잘못된 편견이나 속견즉 잘못된 존재이해를 파괴하여그 현존성에 자기의 존재구조나 존재의미의 본래의 내실이 "고지되는방식으로 해명의 순서가 진행된다이 때 현존성은 특히 세상 일반의 불특정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 방식에 좌우되면서 살고 본래의 자기를 상실하고 있다현존재는 본래의 자기의 적나라한 세계내 존재로 되돌아 가보면알지 못한 채 내던져진그리고 자기의 존재방식을 자기가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피투적 기투 被投的 企投의 존재에 직면하여, "불안"의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고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실은 퇴락의 방식 속으로 도피하여 산다는 것이다이 퇴락의 방식을 비본래성이라고 부르고 이것으로부터 자기를 되찾아야 본래성이 성립하는 것이다그러면 그 본래성은 어떻게 하여 실제로 가능하게 되는 것일까사람은 누구나 죽는다이 "죽음"이야말로 절대로 타인이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실존에 가장 깊이 관련되는추월할 수 없는 가능성이다현존성이란, “죽음에의 존재이다이 죽음이라는자기의 실존이 이제 불가능해지는 가능성으로 선구 先驅해야만현존성의 본래적인 전체 존재 가능이 가능하게 된다그러나 사람은 이런 자신의 죽음으로의 존재를 본래적 전체성으로 이어받을 것을 싫어하고그것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어할 것이다그러한 비본래적인 도피를 타파하여 자기의 본래적인 전체 존재 가능을 이어받도록 촉구하는 것이 실은 양심의 소리인 것이다.1

 


10.jpg





그런데 과연 이렇게 읽기에도 어려운 하이데거의 실존과 양심에 대한 호소를 삶의 실천예술적 표현으로 옮겨보는 것은 쉬운 일일까신건우 작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남이 보면 답답할 정도로 양심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한 개인으로서그러나 예술적으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싶어 하는 야심가로서 본 기획에 대해 무척 적극적인 작가다이는 이번 전시가 자신의 삶의 공간을 재현함과 동시에 현대적 디스플레이 방식을 활용한 현상학적 설치그리고 자신이 하루그리고 하루라는 분절되면서 사실은 끊이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구성되는 결과를 낳았다신 작가는 방에서 이따금씩 TV를 통해 감정과 활력의 상태가 변화하는 자신을 본다그리고 어떤 시간대에는 스스로 오수를 취하기도 함으로써 현존성을 거부해보기도 한다그러나 하루에 한 번자신에게 절을 하며 디스플레이 속 자신이 자신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한다이는 장-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가 대표작 <존재와 무 L'être et le néant>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자기에 있어 있는 즉자존재 卽自存在  en-soi’”, “자기에 대하여 있는 대자존재 對自存在 etre-pour-soi’”의 관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신건우가 자신의 생동하는 초상에 절을 하는 행위는 무의식적 관습에 따르는 전통적 제의와는 다르다오히려 삶의 공간과 죽음을 맞이한 공간을 해체함으로써 예술()의 영생을 주장하는 무신론적 행위이기도 하다따라서 이는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죽였다.”고 선언했다고 하여 자신이 그려온 세계를 스스로 평가절하하거나 부정하는 행위가 아님이 분명해진다오히려 나는 어차피 화가로 태어났으니 미추의 이분법 앞에 늘 앉아있는 것은 운명이다.”라고 말하는 입버릇처럼 스스로를 어떻게 계승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의지이기도 하다잊지 말라이 역시 그의 작품이다.

 


 

3.jpg


더 들어가 보자-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는 <존재와 무 L'être et le néant>에서 인간은 항상 하나의 무 때문에 자기의 본질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말한다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자신을 되돌아본다고 하자분명히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떤 가치관을 지녔던 사람임을 반성적으로 알 수 있다즉 우리의 의식은 우리의 존재를 수립한다그런데 이런 반성을 수행하고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반성되고 있는 존재는 이미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과거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것을 관조하고 반성한다는 점은 이미 우리 의식이 이 존재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 뜻한다즉 의식은 이 존재가 현재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한다그렇다면 이 의식이란무엇인가그것은 오로지 모든 존재와 거리를 두는 힘이라고만 할 수 있을 뿐이다어떤 고정된 본질을 지닌 존재도 이 의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이 의식 자체는 아니므로이 의식은 아무 것도 아닌 것바로  le néant이다.2



2.jpg





따라서 티저 영상에 등장한 묘령의 여인은 미망인일 수도 있고천사일 수도 있고유령일 수도 있지만신건우라는 존재 그 자체일 수도 있고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신건우의 <셀프장례>가 단순히 죽어야 산다.”의 역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임은 더욱 자명하다이번 전시가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한 번씩 공감을 자아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그것은 실존주의가 자기 부정을 통해 이따금씩 만나게 되는 허무주의가 사실은 현대인들에게 얼마나오히려 커다란 효용성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반문만으로도 기대해 볼 자격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그러므로 본 전시를 어떤 퀄리티라는 일차원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그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으리라 생각해본다신건우 작가는 지금 여기서 묻고 있는 것이다당신은 스스로 요단강을 건너본 적이 있는가.

 

 마틴 배런 / 문화기획·비평가·작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세계의 사상고영복사문연, 2002. 5. 20., 사회문화연구소

2. 철학의 숲서동욱, 2010. 8. 29., 네이버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