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답 My Practice /민서정 /printmaking.installation /2016. 7. 16-31

나의 대답 My Practice

민서정 
2016. 7. 16 - 31



1-600.jpg

푸른하늘 _ Crystal Clear _ 실크스크린, 액자 _ 각 99x74cm _ 2016




2-600.jpg

푸른하늘 설치 전경



고백하건대 나는 MAKSA의 열혈은 커녕, 뻔하고 흔한 관람객도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관심은 있었으나 꾸준히 들러 작품을 보는 사람은 아니었고, 지나며 사람을 만나기 위해 들르는 적이 더 많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MAKSA의 그 울퉁불퉁한 벽과, 정리되지 않은 천장과, 특히 그걸 문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은, 제 기능은 하고 있는지 궁금한 나무 문이 종종 거슬렸다. 나는 버튼의 단정히 정돈된 하얀 벽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유디렉은 날것의 생생함도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민서정은 단정한 하얀 벽 대신 생생하다 못해 펄떡펄떡 살아있는 공간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3-600.jpg

연습 (늘어서기) Aligning _ 실크스크린 _ 약 76x160cm _ 2016




민서정은 현실의 이미지들이 가진 기하학적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순간이 즐겁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서 나름의 방식으로 제시는 것이 그녀의 작업이라고 했다. 일순의 이미지를 반복해 찍어내고, 그 뉘앙스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형태를 찾아 설치한다. 멀리서 보면 어떤 것은 구름이고, 어떤 것은 불 켜진 가로등인데 눈을 가까이 가져가 보면 무수한,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망점들만 남는다고, 그렇게 보는 과정과 순간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렇게 가까이 보려면 고요한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 민서정의 작업은, 그래서 고요하고 내밀하다


 4-600.jpg

연습 (짚어보기) Checking in _ 실크스크린, 컬러사진, 스티커, 자석 _ 24.5x17.5cm _ 2016



민서정은 찰나와 순간을 잡아내는데 능숙하다. ‘익숙하다고 하지 않고, ‘능숙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녀가 오랫동안 순간을 이미지화 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이고, 덜컹대는 순간을 포착해 스텐실을 만들고 물감이 얹혀진 실크를 스퀴지로 밀어내면 거기 그 순간이 남게 된다. 다시 한 번 같은 이미지를 프린트하고, 또 한 번 프린트 한다. 기하학적으로 재현된 이미지를 거듭해 찍어내는 민서정의 실크스크린 작업들은 순간의 감정이 묵혀지고 체화되는 동안 단순하지만 명확해지는 흐름을 재현한 듯하다. 상처를 내고, 다른 것으로 덮어 문지르며 이미지를 만드는 실크스크린의 작업 방식은 자기의 찰나와 순간을 잡아내 부드러운 속내에 상처를 내고 다시 덮고 밀어내며 명확해지는 인간 감정의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5-600.jpg

 편지 Letters _ 옵셋인쇄, 책상 _ 낱장 22x61.5cm _ 2016

 (벽면) 연습 (펼치기) Spreading _ 실크스크린 _ 약 29x24.5cm _2016





직선과 점으로 점철된, 기하학의 이미지들이 동진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오랫동안 죽은 공간이었으나 이제는 서울의 관광 명소가 된 그곳 말이다. 작고 조용한 읊조림이 낯선 손님을 부르고, 가격을 흥정하는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마 그 읊조림은 살아있는 목소리들 앞에서 더 작아지고 이내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것이다. 나는 민서정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그렇게 사라질 것이 걱정되었다. 차라리 대차게 소리를 지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민서정도 엇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두어 번 작업을 처음으로 되돌려 다시 시작했다고 했다




 6-600.jpg

(상단) 민서정_ 연습 (뒤 돌아 보기) Looking Back _ 실크스크린, 컬러사진, 스티커 _ 24.5x17.5cm _ 2016

(하단) 민서정_ 깊은 밤 ninht nignt, night _  실크스크린 _ 각 142x99cm _2016




대개의 갤러리가 하얀 벽과 주광색 조명을 사용하는 것은, 공간이 가진 힘을 중화(中和)시키기 위함이다. 갤러리는 수시로 바꿔가며 전시를 하게 되고, 어떤 전시의 어떤 작품이 들어와도 그 나름의 메시지와 힘을 잃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부하고 고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러리들이 흰 벽을 고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MAKSA는 다르다. 일주일에 한 번 장이 열리고, 이제는 Hip하다 못 해, 토박이들이 밀려날 만큼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에 MAKSA가 있다. 관광지 한 복판에 전시 공간이 있는 것도 모자라, 숫제 그 공간도 끌어 안기 위해 아예 시장 쪽으로 통유리 문까지 만들어 놓은 공간이 MAKSA. 안에 걸린 작품과 밖의 풍경이 뒤섞이고 충돌하며 격렬한 에너지를 만든다. 민서정은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인가, 아니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읊조릴 것인가



7-600.jpg

연습 (가로지르기) Crossing _ 실크스크린, 컬러사진, 테이프 _ 가변설치 _2016




민서정의 선택은 영리하다. 공간에 작업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공간을 작업의 재료로 끌고 들어가 낮고 묵직한 읊조림을 만들기로 한 것. 전시된 작품들이 가진 목소리와 더불어, 작가는 아마도 공간과 작품들, 밖의 풍경과 안의 풍경, 작품과 공간의 틈새까지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하고 아우르고자 한 듯 하다. 완결된 듯,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가진 작고 곧은 이미지를 들고 들어가 가장 능숙한 방식으로, 에너지로 꽉 찬 공간 곳곳에 쉼표를 찍고 있는 것. 이 쉼표들은 공간의 풍경과, 그에서 비롯된 힘에 균열을 일으키고, 빈 곳을 만든다. 작품이 만든 균열과 빈 틈은 MAKSA라는 공간이 작가와 관람객들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에 대한 영리한 대답이다. 이 생생한 풍경 앞에, 작품은 어떤 태도를 취 할 것인지, 그리고 그 태도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민서정은 솔직하고 가볍게 쉼표를 찍어 답을 한다. 그리고 쉼표가 찍히는 그 순간을, 민서정은 이제껏 그랬듯 내밀한 이미지로 포착하고 있다

 함성언 (갤러리 버튼)



8-600.jpg

전체 설치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