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서울 / 김명집 / photography / 2016.2.14-2.28
더 서울

Feb. 14 - 28, 2016

김명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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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ul #1_c print_90x60 cm_2016

그리스 신전은 언덕 위에 세워져 그 아래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올려다보도록 건축되었다. 중세의 교회는 마을 중심에서 높고 뾰족한 첨탑으로 신에게 닿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경외심을 드러냈다. 계몽과 산업의 시대가 되면서 신은 효율성과 밝고 명확한 앎으로 대체되어 곧게 뻗은 도로와 정형화된 건축물로 바뀌게 되었고, 그렇게 진화의 결정체인 도시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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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ul #2_c print_90x60 cm_2016


높은 도시 건축물은 하늘과 맞닿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가진다. 즉, 내려다보는 시점은 관찰과 감시에 용이하며 더 많이 더 멀리 볼 수 있으며, 높이 솟은 주목성을 통해서 시선의 권력을 가진다. 이런 높이에 대한 도시의 특성은 새로운 힘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그 힘은 자본으로 전환되어 도시라는 공간성과 기억이라는 시간성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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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ul #3_c print_90x60 cm_2016


조작된 결과는 낯설음과 이질성이 동반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회적인 부작용으로 드러난다. 오래되고 낡은 동네가 주는 매력적인 시간성은 결국 외부에서 유입된 자본의 힘으로 처음의 매력은 사라지고, 그 과정에서 부동산이라는 제도적 시스템은 더욱 폭등하며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관계에 요상한 자본의 공식을 만든다. 이런 개발들은 위에서 언급한 높이에 대한 시선의 권력으로 점점 확장되 결국 “조물주위에 건물주” 라는 문구로 왜곡되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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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ul #4_c print_90x60 cm_2016


작가는 사회적 정치적 이슈가 드러나는 지역에서 그 순간을 포착하여 기록하고 전달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점차 이러한 작업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면서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작업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기존의 기록 사진에서는 후보정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후보정의 비율을 높였다. 한 곳에서 조리개를 열어 사람들과 자동차를 흔적으로 남긴 사진을 수십 장 찍고 한 장 한 장 그래픽 작업으로 사람과 자동차를 지워냈다. 그리고 수십 장의 같은 장소 사진을 겹쳤다. 그렇게 촬영과 보정을 통해서 사진 속의 사람과 자동차가 지워지고 시간의 흐름도 지워져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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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ul #5_c print_90x60 cm_2016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찍은 사진은 사람들과 자동차가 지워지고 건물만이 남겨져 있다. 이는 건물주와 기존 자본의 시선에서 하찮게 여겨지는 대상들로 결국 그들의 존재가 고려되지 않음을 비판하고, 건축물만 남은 모습들은 물질성만 남은 도시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자본은 효율과 성공의 한가지 방식을 이야기하며 곧게 뻗은 도로처럼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자본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삶에서 오는 피곤함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자 한다. 경제활동으로 차가워진 공간이 다시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작은 바램은 건조하지만 따스한 느낌을 만들어 작업에 덧입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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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ul #6_c print_90x60 cm_2016

도시의 정형화와 효율성을 비판한 기드보르(Guy Debord, 1931 ~ 1994)는 자본 시스템으로 축적된 도시 공간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변화되기 위한 보행을 이야기한다. 걸어가는 사람의 눈 높이에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보행자에게 자신의 궤적을 시간, 심리, 기억으로 전유하게 함으로서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이는 개인적 공간에 대한 자본의 시스템과 상관없는 과정으로 우리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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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ul #6-1_c print_90x60 cm_2016

작가는 작업의 후보정 과정의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순간의 기록 매체인 사진에 판타지적인 느낌을 부여하면서 사람이 없는 홍대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을 보여주어 우리의 삶에 대해 환기시킨다. 


■ 구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