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고무줄을 던져봐 / 뫀 / conceptual installation / 2012.05.25-06.01

 

내게 고무줄을 던져봐

 

May 25 - Jun 1, 2012

Opening Reception 6pm May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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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고무줄을 던져봐 Throw me the rubber band, dude!_스뎅에 고무줄_가변크기_2012

 

 

전시 작품을 철수하는 빈 갤러리 안에서 한 사람이 지루한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천정을 향해 무엇을 자꾸 던졌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다시 주워 반복하는 식이다. 다가가 보니 천정에는 작은 걸개가 달려있다. 그가 던지는 것은 노란 고무줄. 갤러리 디렉터와 큐레이터가 혀를 차는 가운데 그는 이 동작을 10여분 동안 반복했다. 바로 인스턴트 퍼포먼스의 대가 “뫀”의 첫 번째 개인전 <내게 고무줄을 던져봐> 현장이다.

 

뫀은 인스턴트 퍼포먼스를 초기미래주의(pre-futurism)의 분파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예술혼을 더 이상 후기현대주의(post-modernism)라는 ‘현대’의 틀에 가둘 수 없다는 의미다. “내 몸짓 하나하나가 미래를 열어갈 것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은 오프닝 리셉션 현장에서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퍼포먼스는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다. 우선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지 않는다. 그가 공연한 10여 분은 현장에 있었던 디렉터와 큐레이터 모두가 기억하기 싫어하는 가운데 과거로 사라졌다. 관객은 갤러리 안에 들어와 천정에 달린 고무줄을 보고 ‘이건 뭐지?’하는 불편한 느낌과 맞닥뜨린다. “초기미래주의의 핵심이다.” 그는 말한다. “디렉터와 큐레이터가 외면한 것은 그들 내면의 예술혼이었다. 자신들도 고무줄을 던지고 싶은 욕망과 경망스레 행동할 수 없는 사회적 지위, 굴레 사이의 괴리... 내가 일깨우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관객이 얻어가는 것은 뭘까. “없다. 나띵(nothing)!”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시공간에서 왜 관객이 반드시 뭘 얻어가야 하나. 그건 저주받은 강박이다. 모더니즘은 작가와 관객을 항상 양분했다. 그 구도 속에서 작가는 뭘 주고 관객은 늘 그걸 받아가야 했다. 이 전시를 보러 오는 관객이 전날 밤 설레어 잠을 설치는 것, 갤러리룩을 차려입고 외출을 준비하는 것, 버스를 타고 환승할인을 받는 것, 그리고 이 전시공간에 들어오는 것 그 자체가 곧 퍼포먼스다. 이런 개념으로 보면 작가와 관객이 따로 없고 이것이 바로 초기미래주의다. 관객이 ‘이곳’에서 뭘 얻냐고? 없다. 그들은 이곳에 ‘오는 길’에 펼친 퍼포먼스를 얻는다.”

 

사실 이 전시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갤러리의 전시 철수와 전시 설치 사이, 빈 시간을 십분 활용한 뫀의 기지가 빛났다. 전시는 10분여 끝에 걸개에 고무줄이 걸린 그 순간 시작됐다. 전시에 대한 홍보가 없었던 것도 파격이었다. “홍보 비용 25만원이 없었다. 하지만 향기로운 꽃에는 홍보하지 않아도 벌이 날아드는 법이다.”

 

애초 ‘상설전’을 표방했던 이 전시는 다음 전시를 설치하던 중, 전시 작가의 건의에 의해 철수됐다. “엄연한 작품인데 의자를 놓고 두 손으로 내려주길 바랬다. 하지만 디렉터가 파리 잡듯이 툭 쳐서 떨어뜨렸다.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혼이 겪는 비애라 생각했다.”

 

그의 바람과 달리 평단의 반응은, 없다. 이 상황을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에 비유하자 그가 말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그 대륙에 대해 어느 누가 말을 했는가. 신대륙에 대한 역사는 콜럼버스의 발견과 함께 시작됐다. 초기미래주의에 있어서 나는 마치 신대륙과 같은 존재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콜럼버스를 기다릴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목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