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오수 / 최현주 / painting / 2015.5.16-31

최현주

나와 오수

May 16  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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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터미널_acrylic on canvas_194x130cm_2015


억수. 억수는 해바라기슈퍼 앞에 살고 있던 개다. 해바라기슈퍼는 최현주 작가가 살던 길목의 조그만 구멍가게 이름이다. 어느 날 부터인가 억수가 보이지 않자 주인 할아버지에게 억수의 행방을 여쭈었다. 억수는 그만 교통사고로 죽고 억수의 새끼 강아지인 돌돌이만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억수는 사실 억순이 라는 이름의 암캐였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바라기슈퍼 자리에는 구멍가게 대신 씨엔유가 자리 잡았다.

최현주 작가는 서울 도시풍경 한켠에 포함된 억수 또는 억순이라고 불렸던 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전봇대와 골목길 일대로 개 한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풍경은 21세기 도시계획에는 포함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포유류 중 가장 오래된 가축이며 인간의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은 거리에서 모습을 감추고 집 안으로 숨어 들었다. 작가는 이런 억수로부터 자신의 상태와 유사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라지거나 잊혀져가는 현상에 대한 의미를 단순히 지나치지 말자는 의지는 ‘억수'로부터 ‘오수’라는 캐릭터의 원형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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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I _acrylic on canvas_30X40cm_2015          잠수부 _acrylic on canvas_30X40cm_2015         배트맨 _acrylic on canvas_30X40cm_2015                                                                                 


여러 접점을 거쳐 탄생한 ‘오수’라는 캐릭터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인간 같아 보이기도 하고 곰 같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곰과 유사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실제의 곰을 자주 접하고 관찰하여 생각되는 닮음이 아닌, 자연의 상징물로 쓰인 곰과 닮아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곰돌이 푸우, 테디베어, 리락쿠마 등등이 있겠다. 이러한 강력한 캐릭터들은 우리가 곰을 인지하는데 가장 구체적이고 일차적인 단서로 작용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오수'는 현재는 퇴색되어가고 있는 ‘신화적 사고’에 더 가깝게 기인하고 있다. 단군설화의 일부분인 웅녀설화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왔다. 오늘날의 사고체계로는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들이지만 최현주 작가는 퇴색되는 한국 토테미즘에서 21세기 회화의 모티브로서 ‘오수’를 소환한다. 해바라기슈퍼의 ‘억수’와 웅녀는 작금의 시대에서 잊혀지거나 가려진 즉, 주목받는 요소에서 비켜나간 존재를 지칭하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오수’ 또한 동물을 모방한 캐릭터라는 숙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즉 캐릭터로써 소모되고 사랑받아야 하는 것이 ‘오수’ 최초의 생존방식으로 결정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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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II _acrylic on canvas_96.5x100cm_2015


이제 이 ‘오수’의 2015년도 얼굴을 들여다보자. 얼굴에 난 수염은 남자 혹은 수컷이라는 것을 짐작케 하고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살과 상처로 말미암아 30대 후반 정도의 굴곡진 인생을 짐작케 한다. 30대 후반이라면 한국 캐릭터 산업이 시작되었던 1980년대 전후 출생이 되겠다. ‘오수’의 초상들을 보면 채도 높은 색상들이 쓰인 그림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풍부하게 표정을 짓는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활동하는 듯하다. 하지만 무채색의 초상<오수II>를 보면 수많은 주름과 그림자가 짙게 내려온 눈두덩 그리고, 절망의 표정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그림에서 ‘오수'는 지금까지의 화려한 의상과 물감 뒤에 숨어있던 캐릭터로써의 피로감을 정면으로 내비치고 진실된 표현의 세계로 넘어왔다. <캐릭터오디션>과 <동서울터미널>을 보면 역시 화면 속의 색상들은 실종되고 무채색의 명도들이 '오수'와 그 주변을 뒤덮고 있다. 이것은 에스키스[esquisse]와 완성의 중간 정도에 해당되는 분위기이다. 이것은 완성을 지체하는 자세라기보다 의도적으로 색상의 껍데기를 벗겨서 그림의 뼈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의지의 것으로 비추어진다. 이렇게 완성된 거친 흑백의 화면은 포장지를 벗겨낸 실재의 삶, 삶의 실체를 보여주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수’는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갓 상경하여 터미널의 붐비는 인파속으로 진입하는 뒷모습이 보인다. 아니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고된 서울살이에 지쳐 귀향하는 뒷모습일지도. 이러한 모습은 ‘이창동'의 리얼리즘(영화감독)’을 연상시키는데, 영화 속 인물들에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배경 설정을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그 인물에 도치되게 유도하는 것이다. 단, <동서울터미널>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오수’는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캐릭터)로써 사실적인 현실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지점이 차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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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오디션 _acrylic on canvas_180x120cm_2015


<캐릭터오디션>의 배경을 보면 오수의 현재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받아야 할 캐릭터가 성공에 도달하지 못하고 시류에 밀려 퇴물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이는 최현주 작가의 심리상태가 강하게 반영된 일종의 자화상의 모습일터이다. 본디 작가는 애니메이션을 수학하였으나 만화산업 시장의 복잡다단함과 실제의 삶을 살아내는 소시민으로써의 고됨을 ‘오수’에게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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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이탈 _acrylic on canvas_116.5x80cm_2015


<궤도이탈>에서 우주를 떠도는 ‘오수’를 보고 있자니 ‘프란시스 고야’의 <개>가 떠오른다. 검은 언덕 혹은 황량한 사막에서 개 한마리가 힘겹게 머리만 내밀고 있는 그림이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침묵과 텅 빈 공간만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이러한 삭막한 공간에 혼자 남겨진 개 한 마리는 어쩌면 지구의 마지막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난 후의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 거쳐야 하는 순환 고리의 전단계라고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에서 떠도는 ‘오수’의 운명은 회화속이라는 장소에서 제2의 언어와 삶으로 재창조되고 있는 중이다.

전시를 보며 환상과 이상을 넘나 드는 게 가능하도록 창조된 캐릭터조차 현실의 냉혹함을 벗어날 수 없음은 최현주 작가의 ‘오수’를 보며 느낄 수 있다. ‘오수’가 갈아입는 다양한 옷과 표정들은 우리가 생존해내야 하는 시공간에서 역할과 변화에 맞는 일종의 코스프레를 하는 자신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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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르수_우잘라 _acrylic on canvas_60X90cm_2015     택시드라이버 _acrylic on canvas_60X90cm_2015      구직 _acrylic on canvas_60X90cm_2015


우리의 삶은 디즈니와 픽사 속의 알록달록한 환상이 펼쳐지는 세계가 아님을 안다. 스크린에서의 영상이 끝나면, 거친 현실세계로 진입하여야 하고 ‘오수’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현실세계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나가야 한다. 작가는 동화적인 캐릭터로 현실의 차가움을 담담하고 냉담하게 보여준다. 이는 최현주 작가가 느끼는 세계이고, 우리가 느끼는 세계이고, 현실이라고 쓰이는 삶의 풍경이다.    김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