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환호와 비명 / 강서영 / installation / 2013.09.13-09.29

강서영

 

물에 빠진 환호와 비명

 

Sep 13 - 29, 2013 12pm-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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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영_물에 빠진 환호와 비명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필자의 어머니 역시, “이미 배가 부르니, 짜장면은 너 혼자 다 먹어도 된단다. 그리고 엄만 짜장면 싫어해.” 라고, 하셨다.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알 순 없지만, god의 ‘어머님께’라는 대중가요는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감성에 호소하며 큰 히트를 쳤던 노래이다. 


우린 거짓말을 어릴 때 가장 금기시해야할 첫 행동양식처럼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신다. 선의의 거짓말을 하시는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에 대한 찬반이 오고가지만, 굳이 어머니의 희생으로 비롯된 거짓말까지 대상이 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른 예를 들자면, 병원의 의사들 또한 심각한 병세의 위기를 환자가 극복하길 바라며 질병의 상황을 거짓말하기도 한다. 여기서와 같은 거짓말의 다양성에, 우리의 선입견이 살짝 흔들려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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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영_물에 빠진 환호와 비명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선입견이라 함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을 말한다. 이번 ‘물에 빠진 환호와 비명’ 전에서 작가는 습관적으로 만들어지는 공식화된 감정으로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인식들에 대해 이야기 하려한다. ‘거짓말은 무조건 나쁜 것이야, 절대 안돼!’, 와 같은 획일화된 인식들 말이다. 

사람들은 각자가 만들어낸 생각하는 방법들로, 실제가 아닌 가짜들을 추리하며 선입견들을 나눈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와 불필요한 현상들로 또 다른 병폐들이 쌓이는 것에 작가는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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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영_물에 빠진 환호와 비명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작가는 언젠가 넓게 펼쳐진 비닐하우스의 풍경을 보고 바닷물이 출렁거리며 반사된 햇빛들로 느껴졌다 한다. 다양한 은유적인 시점들이 있었지만, 가장 강한 착시의 현상으로 인식의 경계가 변화됨을 느낀 것이다. 비닐하우스를 보고 모두 똑같이 햇빛을 느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햇빛으로 느낀 누군가의 여유를 다양하게 헤아려 볼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인터뷰 중 내내 작가는 사람들의 대화방식 중 이미 가둬놓고 나누는 대화들에 큰 싫증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눈을 가리고 먹을 때 느껴지는 미각의 차이가, 이미 만들어진 식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보이는 환호와 비명의 차이는 우리의 주관대로 생각하고 느껴질 것이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자신을 객관화 시켜 바라보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허나 특성을 활용하지 못하면 바르지 않게 변질되는 퇴화만 진행될 뿐이다. 우리는 사회적인 관계들을 이루어 나가며, 참으로 많은 비판들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 스스로를 먼저 살피고 다양성을 포용하며 수용하는 객관화의 과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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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영_물에 빠진 환호와 비명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강서영 작가는 플레이스막에 여러 종류의 축소된 비닐하우스를 펼쳐놓았다. 조형적으로 크게 변형되지 않은 비닐하우스들은 갤러리 공간 안에 가득 풍경화 되있다. 작가의 의중을 헤아려본다. 바닷물에 비친 햇빛이라는 거짓말을 관객에게 하는 것이 아닐까? 미화되지 않은 거짓말에 속아줄 관객은 없는 것인가? 아니면 혹시, 작가와 유사한 감성의 증폭이 관객에게 전달되어 누군가에게 같은 거짓말을 하는 건 어떨까? 하며 감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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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영_물에 빠진 환호와 비명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즐거운 비명, 끔찍한 환호 또한 우리가 언젠가는 표현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누군가 알아차려 준다면, 참으로 즐거운 소통의 조화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유디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