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나날들 / 정은별 / painting , installation / 2015.11.14-12.05
정은별

사라지는 나날들

Nov. 14 - Dec. 5,  2015
 
후원 / 서울문화재단


흘러내리는 밤_장지에 채색_73x61cm_ 2015(web600).jpg  
흘러내리는 밤_장지에 채색_73x61cm_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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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나날들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5

 

"불온성의 불안은 공감과 반감이 뒤섞인 혼합적 정서다. 뜻하지 않게 밀고 들어온 침입자에 대한 반감이 없다면 불안감이 형성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시 보이지 않게 밀쳐내고 싶다는 반감. 그러나 그런 반감만 있다면 불안감은 형성되지 않을 것이다. 외면하고 얼굴을 돌리면 그만이고, 못 본 체하면 그만인 것이기 때문이다. 불온성의 불안은 반감이 가는 그 어떤 것이, 고개를 돌려도 다시 떠오르고 눈을 감아도 다시 생각나는 정서적 상태다. 그것은 불안에 어떤 공감의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아니라고만은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나'를 잠식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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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나날들-결혼식_혼합재료_40×74×24cm_2015
 

성스러워야 할 결혼식장에 불온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있다. 누군가 결혼식장의 빛을 모두 거두어 간 듯하다. 분명 미소 지으며 바라보기에 불편한 결혼식의 한 장면이지만 이 부정의 질감을 상당기간 그리워했다. 현대예술창작의 편집과 기교, 스타일의 과잉 속에서 투박한 청년이 일종의 '가려진 현실의 일부를 건네 보려는 인상'은 순진하게도 머릿속을 맴도는 이상적 예술가의 모습에서 꽤나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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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된 사람_캔버스 천에 물감, 바느질, 콜라주_23×17cm×3_2014

우위를 선점한 정은별 작가가 방문한 결혼식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백년가약을 맺는 성스러운 장소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상당하다. 두터운 화장과 3시간 대여의 서구건축을 표방한 예식장, 가짜 꽃과 진짜 꽃, 사진 속에 박제될 미소와 부케 퍼포먼스, 드레스를 보조하느라 신부의 등 뒤에서 분주한 드레스 도우미, 서둘러 먹고 떠나는 바로 그 곳, 그곳에 사랑의 상징으로써 기표는 쉽사리 발견되지 않지만 우리는 남녀 한 쌍의 진실한 사랑만을 발견하고 축하해준다. 단지 관찰자로써 투덜거릴 만한 요인으로 결혼을 치부하기에는 대다수에게 닥칠 강력한 통과의례이다. 결혼의 장소와 장식 등의 차별화된 선택으로 개성을 발현한다는 순진한 믿음은 더욱 위험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사회가 발전될수록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저녁 식사 메뉴정도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삶의 주체로써 선택의 영역이 좁아지는 속도를 원심력 삼아 규약에서 탈주하는 운동성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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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_캔버스 천에 물감, 바느질, 콜라주_26×21cm×6_2015

모체 없는 한국형 유사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예시로 작가는 '디스토피아'2) 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전쟁과 기아라는 재해에서 점차 멀어지면서 일종의 태평천하가 도래했다고 치부되는 위험이 도사리는 바로 그 지점을 견제하기 위해 사용된 강한 어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전시장 곳곳에 놓여 진 작은 독수리들은 시기의 징후를 알아채고 상해가는 성질을 탐하려 앉아서 기다리는 존재들이다. 검은 독수리들은 종이접기라는 대중적 방법을 사용하여 작고 귀엽지만 동시에 어쩐지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것은 감시자이자 예언가, 그리고 썩은 고기를 탐하는 포식자의 위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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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_캔버스 천에 물감, 바느질, 콜라주_26×21cm×6_2015

정은별 작가는 일종의 리바이어던(Leviathan)3)으로 변신하여 디스토피아적인 이미지를 개개인에게 부여하여 종이인형을 제작한다. 작품 '도대체, 왜' 시리즈를 보면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의 각각의 인물들은 얼굴 위의 기관들은 생략되어 있고 땅을 딛어야 하는 하체도 상당부분 퇴화된 형태이다. 또한 그을리고 태워진 자국들 사이로 모두의 품에 허옇고 둥근 덩어리를 품고 있다. 정은별 작가는 이 사물을 '포대기' 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아기 이불보자기 사이로 아기의 얼굴을 없고 어두운 그림자만 들어차 있다. 가장 소중하게 감싸고 지켜낼 것을 포대기로 쌌지만 정작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각자 상상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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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넘기_종이에 과슈, 바느질, 콜라주_29×79cm_2015

작품 '잃어버린 조각' 시리즈는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수 있어서 오래 시선이 머무른 적 없던 공사장, 공원의 귀퉁이, 차도의 그늘, 담장 등을 작은 사이즈로 스케치 한 것들이다. 그러한 이미지를 사각퍼즐로 파편화하여 풍경의 일부를 섞어두었는데 원본이 갖고 있는 보편적이고 사사로움으로 인해 어느 부분이 변형되었고,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 원래의 고유함을 부여받지 못한 풍경이미지는 복구할 원본대상의 부제로 인해 지속적인 편집과 변형에도 침묵으로 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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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각_종이에 과슈_18×24cm_2015

정은별 작가의 감각으로 인지되는 사회의 인상들은 불길하고 소시민들은 얇은 종이인형 속에 박제되어 흐늘거린다. 성공적인 인생을 향해 달음박질 쳐왔지만 우리가 달리는 지면의 구조와 원리를 바라볼 여유가 없다. 정은별 작가가 제시하는 바라보기를 통해 나 자신이 포함된 환경과 사회의 화장 지운 얼굴을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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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인용 드로잉-파블로 네루다, 심보선_혼합재료_30×25cm×2_2015




* 각주1) 이 진경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휴머니스트, 2011, 33쪽 2)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가상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회는 주로 전체주의적인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통제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단어는 존 스튜어트 밀의 의회 연설에서 처음 쓰인 단어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그리스어 지식을 바탕으로 이것이 '나쁜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언급했는데, 이것은 dys(나쁜)와 topos(장소)가 결합된 단어이다. (위키 백과)3) 리바이어던(Leviathan)은 홉스(Thomas Hobbes)의 저서로 1651년 작품이다. 정식 제목은 『리바이어던, 혹은 교회 및 세속적 공동체의 질료와 형상 및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이다. 책명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 41장에 나오는 바다의 괴물 이름으로서, 인간의 힘을 넘는 매우 강한 동물을 뜻한다. 홉스는 국가라는 거대한 창조물을 이 동물에 비유한 것이다. 성립 과정에 대하여 여러 가지의 억측이 있으나 사실 홉스는 영국에 그때까지 주권의 소재가 명확치 않았던 사실이 내란 혁명의 최대원인이라고 확신하고, 인간 분석을 통해 주권의 필요성을 논하고, 절대주권을 확립함으로써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달성할 것을 원하여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위키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