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민선 / 덩어리 / painting / 2017.5.5 ~ 5.28






이 해 민 선

덩   어   리

2017. 5. 5 ~ 5. 28







"늙어 자식이 없으면 외로울까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고 합니다. 
동네에 전철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날 때가 정작 전철이 들어섰을 때 보다 땅 값이 제일 많이 뛴다고 합니다. 
가정법으로 현재를 사는 곳, 불안은 높은 봉우리에 육신을 던져 놓고 풍장 하게하고 살고 있는 땅엔 발뒤꿈치가 없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올라 갈 수 있는 곳의 그 쯤 산허리의 흙을 한 주먹 퍼와 진흙을 반죽하며 나의 봉우리를 만들어 봅니다. 
매일 휘발되는 나는 여전히 묵직한 덩어리입니다." (이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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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 없는 곳 _ 포즈    116.6x90.7 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17 







이해민선 작가는 자연에 가까이 존재하며 작업을 합니다.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에서 얻고 사용하곤 합니다.
이 첫 문장을 읽으면 자연과 풍경에 대한 각자의 이미지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덩어리』展에서는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작품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11점의 회화작품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물질, 그중에서도 인공물의 절정이 변형된 형태로,
또는 사라진 형태로 반복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인공물이 담긴 작품들을 조금 더 바라보고 있다 보면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그러한 인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회색빛이 가득할 것만 같은데 실은 에너지가 가득한 색이 '덩어리' 로 온통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품 '무른땅에서' 의 흙으로 소조한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보면 이해민선 작가의 2012년도 작품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에는 색보다 '물질'의 질감을 더 중요시했었기 때문에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고, 다양한 물질에 대해 실험하고 작업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업에는 '물감' 과의 싸움이었다고 작가는 고백합니다. 
떠올리고 생각했던 색감과 다른 차이들, 아크릴 물감이기에 마르고 나면 발색이나 질감이 또 다르게 표현되고, 
같은 물감이여도 캔버스에 따라 다르고, 물감 회사 뿐 아니라, 물감 튜브 하나하나의 특성이 다 다름을, 생각했던 색, 물 조절, 터치방식 등 
매우 예민하게 색이 달라짐을 작가는 잘 이해하고 표현합니다. 
색감이 주는 감정은 다양합니다. 다시 한 번 슬며시 흙더미를 보고 있노라면, 계속 더 바라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사로잡혀 버립니다. 회화가 가지고 있는 반박할 수 없는 수 많은 매력때문이겠지만, 
그보다 작가와 색의 오랜 고민이 느껴지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색감과의 관계, 재료들과 씨름하는 것이 작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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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 없는 곳 _ 포즈    181.8x227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17 







매 번, 대다수의 작가들이 그러하듯, 이해민선 작가의 작업이 얼마만큼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는지 느껴집니다. 
춤에서 즉흥 이인무는 큰 틀 외에는 미리 연습하고 짜여진 것이 없기에 서로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춤입니다. 
서로 소통이 어긋나면 움직임이 허공에 사라집니다. 움직임을 받고, 그에 반응하는 움직임을 짧은 순간에 결정하고 다시 상대에게 주는, 
어떻게 나아갈지 미리 예측할 수 없는 매력 덕분에 어렵지만 기꺼이 시도하게 되는 춤입니다.
이해민선 작가의 작품은 그러한 즉흥 이인무처럼 집요하게 캔버스와 색과 손의 움직임과 마음의 주고받는 소통의 과정을, 
그러한 작업이라는 상황을 연습이 아닌 무대 위에서처럼 집중력을 가지고 즐긴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길었던 작업 과정은 작품에 담긴 에너지로 그 생각에 힘을 더해줍니다.  

이해민선 작가님의 손은 유독 작고 예쁩니다. 그 손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캔버스에 담은 이야기는 참 명확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가까워 그런지 참 크다는 느낌이 듭니다. 참 크고, 참 명확한 이야기는 저의 시선을 오래 붙들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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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30.5x45.5 cm   종이 위에 오일 2017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성미는 흔한 여성의 이름 중 하나이며, 성미산에서 산을 뗀 부분의 명칭이기도 합니다. 
이해민선 작가는 성미산에 매일 오르며 자신의 시선을 정직하게 담아내려고 했고,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산이 점점 인간스런 신체가 되어가는 듯하여 성미산은 성미가 되어갑니다. 
화면에 담기지 않았지만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화면 밖으로 잘려나간 나머지 이미지 들,
우리의 머릿속에 규정된 이미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우리는 현재가 아닌 미리 벌어지지 않는, 존재하지도 않는 일들과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봉우리 작품 앞에서 제 시선은 조금 멈추게 됩니다. 
산의 그림을 담은 작품들은 모두 봉우리가 잘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리고 우리는 작품을 보면 잘려나간 
혹은 투명한 공간속에 봉인된 봉우리까지 저절로 떠오릅니다. 
그토록 규정된 봉우리가 우리의 삶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명확한 모습으로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는 각각 개별 봉우리가 존재함을, 그리고 그것이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삶에서 절정의 시기는 그 누구와도 같지 않습니다. 
각각의 개별 봉우리처럼 다양한 형태로 절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처럼 작품에서 절정을 변형 혹은 개별적인 상상 속에서 완성시키도록 하고있습니다. 
누구에게는 꼭짓점과 같이 첨예한 봉우리이고, 누구에게는 완만하고 둥근 가슴처럼 부드러운 봉우리일지 모릅니다.
당신의 봉우리는 어떤 이미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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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추의 강    116.6x90.7 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17 






우리의 삶의 모습은 가정과 유추들이 반복됩니다. 그러한 반복의 이미지들은 새로운 에너지로 이해민선 작가의 작품에 담겨있습니다. 
반복되는 이미지들과, 가정과 유추를 사라지게 한 작가의 작품은 기존과는 조금 달라진 새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자연과의 관계를 통해 얼마나 더 깊은 시선을 가지게 될까요. 
자연을 통해 사유하는 작가의 힘있는 시선에 힘을 실어 카타르시스가 담긴 마무리였으면 좋으련만, 
그 절정의 봉우리를 저 역시 상상의 봉우리로 남겨두겠습니다.  



바로 이어 이해민선 작가의 작업노트 중 5가지 이야기를 발췌하여 담습니다.
이 다섯 가지 이야기라면 , 잘려진 봉우리에 대한 어쩌면, 충분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5월, 작품 앞에서 존재하는 우리는, 그 시간동안 만큼은 묵직한 덩어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1. 절정 없는 풍경 모서리는 있으나  꼭짓점과는 다르고  서 있으나  꼭대기가 없는 것 같고위태롭게 있으나 사라지지 않는다. 절정은 없으나 포즈는 있구나.
2. 봉우리와 아날로그  그림 안에는 산과 그 산을 모방하여 점토로 조소를 한 덩어리가 탁자 위에 놓여져 있다. 그런데 그 탁자 위의 조소된 덩어리 역시 봉우리가 잘려진 산이다. 조소된 덩어리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네모난 프레임 안의 산모양인 것이다. 그림 속, 산은 전체인지 일부인지 모를 일이나 덩어리는 미완의 것이 아닌 온전한 하나의 덩어리 전체이다. 그 덩어리엔 봉우리가 존재한다. 개인의 창조적 세계가 원형의 세계를 유추하게 하는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주체가 된다.
3. 그림의 배경은 주로 경기도 용인시 이며 서울과 연결되는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대형 공사 현장 같은 공적인 움직임이 있는 풍경이다. 그 배경앞에 등장하는 구조물들은 성산동에서 개개인이 꾸리는 식물들이다. 이러한 구성은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풍경에서 사회적 서사가 읽히고 그 서사를 표현하려고 다시 풍경을 이용하다보니 자연스레 배경은 공적인 힘이 들어간 풍경들이 되었다. 용인은 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곳이며 서울 성산동은 내가 사는 동네이다. 성산동은 상가건물의 뒤뜰 화단에 과일 포장재 스폰지로 싸여지고 박스테이프로 봉해진 나무가 있다. 빨간 벽돌집 측면 화단에 나무의 매무새를 따라 하얀 방한용 스폰지로 싸여지고 박스테이프로 봉해지고 하얀 줄로 묶여져 벽에 박힌 못에 고정되어진 나무가 있다. 빨간 벽돌집 옆 길가에 검은 비닐로 싸여진 나무가 접이식 간이 의자에 노란 노끈으로 성글게 묶여져있다. 그 길가 끝에 검은 차양 천, 빛바랜 하늘색 천막 천 , 아직 빛바랜적 없는 파란 천막천 ,투명한 비닐, 나무무늬 비닐 장판 들이 모두에 기어코 감싸여지고 매무새 끝 마다 다양한 종류의 벽돌들이 안심하듯 놓여 져 있다 .  연남 세탁소 차양 봉에 파란 비닐 끈과 주황색 빨래 줄로 길게 거리를 두고 묶여진 나무가 있다. 임박사네 정육점 문 앞에는 반투명 비닐에 쌓여지고 노란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겨져 있는 열대나무가 있다. 이모든 풍경은 동네 큰 상가, 빌딩들이 무너지고 다시 새 건물이 들어서는 시간 동안에도 여전히 그대로다.
4. 노란 장판 가정용으로 사용하는 나무무늬 비닐장판 또는 노란 비닐장판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본다. 무언가를 덮어 놓거나 감싸 놓거나 깔아 놓는데곧 다른 해결 방편이 마련 될 '임시적 사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래도록 거기에 놓여있다. 깊이 모를 웅덩이를 노란 장판이 아슬아슬하게 덮고 있는 풍경을 그렸다.'누구씨'의 가정에서 사용했을 장판이 공공장소의 어느 모퉁이에서 먼지에 그을리고 햇볕에 바래고 바람에 풍화되어 가장 늙은 모습으로 있다.  웅덩이가 외부 세계의 불가항력적인 혹은 인공적인 결함이라면 장판은 개인의 내부적 자원을 상징한다. 공적 외부의 결함을 개인의 내부 것들로, 임시적으로 해결 하게 되는 것이다.
5. 모래를 보면 물감을 묽게하여 두드리듯 그리고싶고 진흙을 보면 물감을 반죽하여 바르듯 그리고 싶어진다. 한 화면에서 이 두가지를 조율하며 물감과 씨름하는 경험이 이번 작업의 절반이다. 작업초기에는 작업 '노란장판'처럼 사회적 서사에 좀 더 방점을 두고 그렸다. 작업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늘 작업의 귀결점이었던 '물질과 원형' 그래서 결국 ' 존재' 에 대한 것으로 무게 중심이 살짝 바뀌면서 고민 끝에 '덩어리' 라고 정했다." 
(이해민선의 작업노트 中 발췌한 5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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