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서 하나 / 최세진 / painting / 2018. 10. 20 -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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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게임(부채)_162.2X130.3cm_oil on canvas_2018



회화의 역할 : 총천연색 프로파간다


익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큰 공을 굴리고 콩 주머니를 던진다. 디테일한 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아이들이 ‘운동회’ 중이며 시합 종목, 현장의 상황 등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각각 다른 성장 배경과 정체성을 지닌 개인들이 하나의 그림을 놓고 같은 장면을 연상해 내는 공통의 기억은 무엇일까. 개개인의 추억과 집단 기억의 경계에서 우리는 이를 단순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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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굴리기_193.9 X 130.3cm_oil on canvas_2018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근대 문물이 쏟아지던 조선의 19세기 후반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은 조선의 지배를 공식화했다. 일본은 조선의 사회문화를 예속시키기 위한 정책들에 박차를 가하며 사회 전반에 걸친 개조를 시작하였고 교육도 포함된다. 일본은 교육을 통해 조선의 아이들을 천황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이상적인 황국신민으로 양성하고자 했다. 따라서 아이들의 신체는 건강하게 관리되어 올바른 애국정신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했고 체조, 체육은 가장 우선시 되는 기초 교육과정이 된다.


그러나 체육이 반드시 일제강점기의 산물인 것만은 아니다. 1895년 고종은 조선을 문명부강한 국가로 만들고자 교육조서를 발표한다. 곧이어 조선에 근대식 학교가 도입되었고 교육조서의 핵심인 지智, 덕德, 체體를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신교육을 시작하였다. 주목할 지점은 고종이 강조한 세 가지 항목에 체, 즉 신체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고종과 계몽 운동가들에게도 아이들은 풍전등화에 놓인 국가를 위기에서 구할 무사가 될 자원이었다. 근대화 된 ‘건강한 신체’는 ‘힘’을 의미했고 승리를 위한 필수 전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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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펼치기_193.9 X 130.3cm_oil on canvas_2018



아이돌 그룹이 일사불란하게 ‘칼군무’를 춘다. 그 모습은 가히 경이로우며 아이돌의 아름답고 이상적인 신체를 극대화 한다. 아이와 성인의 중간쯤인 그들의 신체는 사회가 그들로부터 기대하는 판타지를 구현한 실재이다. 군무는 그 판타지와 매력을 증폭하여 대중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한 요소로 판타지의 충족은 자본으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아이돌의 신체는 자본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섹슈얼적인 동작과 표정,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의상을 입은 그 아이들이 대부분 15세에서 17세 미만인 것은 그다지 논의거리가 아니다. 아이돌은 K-Culture를 이끄는 애국자이며 국가적인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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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올리기_145.5 X 112.1cm_oil on canvas_2017



아이러니하게도 천황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황국신민을 양성하고자 한 일본의 논리와 위기 상황의 국가를 구할 무사 양성을 기대한 고종의 논리와 지향점은 동일하다. 그리고 이는 현대 사회에서 신체를 자본과 등가교환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는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일본의 식민사회와 조선의 계몽사회, 대한민국의 자본사회는 아이들을 국가의 미래 자원으로 규정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아이돌을 국가 문화 수출의 선봉장에 서 있는 자원이자 사회의 비현실적인 이상향을 투영한 대상으로 보는 우리의 시선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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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미 던지기 _145.5 X 112.1cm_oil on canvas_2017



총천연색 프로파간다 


복숭아 빛 뺨을 가진 통통한 아기와 소년, 소녀들이 함박웃음을 띄고 체육 활동을 하거나 결연한 표정으로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 이러한 도상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교육을 통해 만들어 내고자 했던 이상적인 황국신민상 중 하나로, 일제는 이를 조선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주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 선전했다. 완벽한 신민국가의 소년/소녀들은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운 파스텔톤의 배경 속에서 근심걱정 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다. 국가와 근대는 이미지 속에 유토피아를 창조하고 압축된 도상은 총천연색들로 채색되어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희석하고 전체주의의 논리를 미화한다. 


이 같은 전략은 현대 사회에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건강한 신체와 명랑한 몸짓은 서구지향적인 신체와 성적 코드를 내포한 몸짓으로 교체되었고, 나라의 일꾼이 될 아이들은 대중문화의 선봉장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는 권력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른들이 이들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은 근대와 다름없다. 세팅된 무대 위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움직이는 아이돌의 동작이 총천연색 조명과 의상으로 인해 증폭된다. 캔디컬러의 세상 안에서 구현되는 소년/소녀들은 생기발랄하고, 경쾌하며, 꿈으로 가득 차 있다.  


가감 없는 원색의 사용과 강렬한 보색 대비로 이뤄진 배경, 신체에 칠해진 혈색 도는 붉은 빛의 피부와 멀끔한 의복은 일제강점기의 현실에서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아이돌이 받는 인기와 영광, 부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뚫고 올라온 1인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대중매체의 위력을 어느 때보다 실감할 수 있는 지금 총천연색의 껍질은 대상을 미화하는 포장지로 기능한다. 도상과 색상이 결합하고 문구가 더해져 자본주의의 프로파간다가 된다. 계몽기 서구로부터 유입된 우승열패의 사회론은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일등 신화로 치환했고 현대로 넘어와 세계적, 초일류로 증폭된다. 건강한 신체에 깃든 정신으로 세계 초일류가 되는 것은 어떤 도덕적 논의나 담론도 무력화시키는 힘을 갖게 되었고 색채는 그 폭력성을 포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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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청팀)_160X60cm_oil on canvas_2018

줄다리기(홍팀)_160X60cm_oil on canvas_2018



회화의 역할


작가에게도 아이들의 신체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완벽한 형상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마땅히 있어야 할 이목구비가 없이 형상만이 남은 비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신체에는 채 자라기도 전에 어른들의 바램이 투영되고 그것을 실현해야 하는 막중한 의무가 부여된다. 수직적인 체계 안에서 사회화가 시작되고 학교와 단체라는 무리에 속하면서 그들의 신체와 정신은 근대식으로 시스템화 되고 일등이 되는 법을 익힌다. 풀어놓은 아이들은 순수함 속에 내재된 ‘약육강식’의 본능을 근대식 시스템 안에서 드러내며 어른들이 투영한 욕망을 체화한다. 


최세진의 작업은 이처럼 개인에게 각인된 한국 사회의 집단적인 관성을 끄집어낸다. 단지 아름다운 색상으로 이뤄진 총천연색의 화면 속에는 우리가 거쳐 온 수직적이고, 경쟁적인 교육에 대한 기억과 훈련된 사회성, 이것을 통과해야 우리라는 집단 안에 안착 할 수 있는 안도감 등이 뒤섞여 있다. 군중을 통해 길러진 개인에게 심신단력과 단결력을 이유로 근대식 교육이 주입한 몸짓들은 삶의 어떤 순간마다 무심코 연상되며 그 효율성을 증명한다. 움직임과 신체가 표상하는 아이콘을 즉시 나의 경험과 결부하는 뇌의 기민함은 반복 훈련의 산물이며, 우리는 제도와 집단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나의 신체를 전체 안에 속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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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기체조(피라미드)_90.9X72.7cm_oil on canvas_2018



수직적인 규칙과 규율, 단체 생활의 미덕과 순응은 수평의 가능성과 창조성이 대세인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말로만 외치는 수평의 문화 뒤에 여전히 계급과 수직논리가 작동한다.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부조리를 목격하며 ‘사회생활은 다 그래’ 라는 얘기를 위안 삼아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익명이다. 그들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나이를 먹어가며 각기 다른 삶을 살아내어 어른이 되겠지만 결국 비슷한 삶의 패턴 속에서 비슷한 꿈을 좇는 우리가 될 것이다. 


대중은 현대예술의 무용함을 쉽게 말한다. 그러나 어떤 그림들은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질문을 불러오며, 기억을 통해 삶의 편린을 돌아보고 반추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이것이 바로 회화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으며 아직까지 회화가 유효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고경표